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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에트-고랜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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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말 === 1988년 4월 14일 제네바에서 고랜드와 유고랜드가 상호 내정 불간섭과 난민 귀환을 약속하는 협정에 서명했고, 루이나와 사비에트가 보증국으로 서명했다. 이 「제네바 협정」에 따라 사비에트군은 5월 15일 철수를 시작해 8월 15일까지 절반을, 이듬해 2월 15일까지 전원을 철수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협정은 양측 후원국이 각자의 동맹에게 무기를 대는 것을 막지 않았다. 사비에트는 나지불라 정권에, 루이나는 무자헤딘에 계속 무기를 보냈고, 무자헤딘 정당들은 협정 당사자도 아니었다. 1989년 2월 15일, 제40군 사령관 예브게니 V. 로디오노프 중장은 테르미스크의 「우정의 다리」를 걸어서 건넌 마지막 사비에트 군인이 되었다. 그는 다리 위에서 기자들에게 "내 뒤에는 사비에트 병사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9년 1개월 3주 만이었다. 서방의 예상과 달리 나지불라 정권은 사비에트군이 떠난 뒤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1989년 3월 무자헤딘은 유고랜드 군정보국의 재촉 속에 잘랄라바드를 공격했으나, 정부군의 완강한 방어에 막혀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내고 물러났다. 사비에트의 원조가 이어지는 한 나지불라는 버틸 수 있었다. 최대의 위기는 원조의 중단이었다. 1991년 9월 루이나와 사비에트는 이듬해 1월 1일부터 고랜드 양측에 대한 무기 지원을 동시에 끊기로 합의했다. 연료와 식량까지 끊기자 정부군 민병대가 잇달아 이탈했고, 북부의 우즈베크계 민병대 지도자 압둘 라시드 도스툼마저 무자헤딘과 접촉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나지불라는 1992년 3월 도스툼에게 북부 여러 주의 통치권과 관세 수입을 넘겨주는 조건으로 그의 이탈을 막았다. 4월 무자헤딘 연합군이 아바나를 포위했지만, 도스툼의 민병대가 수도 북쪽 보급로를 지켜 내면서 수도는 함락되지 않았다. 수도 공략에 실패하자 무자헤딘은 서로에게도 총을 돌렸다. 마수드와 헤크마티아르가 정부군과 싸우는 한편 수도 공략의 주도권을 놓고 서로 다투면서, 아바나는 사비에트 점령기에도 겪지 않았던 포격에 시달렸다. 1992년부터 1996년 사이 아바나에서만 수만 명의 민간인이 숨졌다. 나지불라는 1993년 비상조치를 선포해 1990년 도입했던 다당제를 정지하고 당명을 다시 인민민주당으로 되돌렸다. 이 혼란 속에서 1994년 칸다하르에서 물라 우마르 알-칸다하리가 이끄는 [[탈레반]]이 등장했고, 탈레반은 1996년 9월 27일 아바나를 점령해 고랜드 이슬람 토후국을 선포했다. 나지불라의 공산 정부는 북부 마자르이샤리프로 물러나 도스툼의 민병대와 함께 국토의 10~15%를 지키며 버텼다. 이 정부가 아바나로 돌아온 것은 2001년, [[벨포르 협정]]으로 한때 자신을 무너뜨리려 했던 루이나와 손을 잡고 나서였다. {{{#!wiki style="border: 1px solid gray; border-radius: 5px; background-color: #F2F2F2,#000; padding: 12px" 상세 내용은 [[고랜드 내전]] 문서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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